어릴 땐 한없이 길던 1년이 지금은 순식간인 진짜 이유

어릴 때 여름방학은 끝이 없었는데 지금은 한 해가 순식간이다

초등학생 시절 하루는 길고 길었다. 방학은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은 새해 인사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연말이다. 같은 1년인데 체감 속도가 이렇게 다른 이유가 뭘까. 이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라 뇌가 시간을 계산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흥미로운 건 이 가속이 거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문화도 직업도 다른데 다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라진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여기에 답을 내놓으려 애썼다. 답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고 서로를 보완한다.

비율로 따지면 답이 보인다

가장 오래된 설명은 19세기 철학자 폴 자네가 내놓았다. 다섯 살에게 1년은 인생 전체의 5분의 1이다. 쉰 살에게 같은 1년은 50분의 1에 불과하다.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 해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진다. 그래서 똑같은 12개월도 나이가 들면 더 얇게 느껴진다. 단순하지만 꽤 설득력 있는 가설이다.

비율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주의와 새로움이라는 또 다른 열쇠를 꺼낸다. 어릴 땐 세상 모든 게 처음이라 한순간 한순간에 주의를 잔뜩 쏟는다. 나이가 들면 익숙한 일이 늘어 주의를 덜 쓴다. 주의를 적게 준 시간은 기억에 얇게 남고 그래서 빨리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이 시간 가속을 다룬 정리는 여러 가설을 한자리에 모아 비교한다.

이 새로움 가설은 우리가 인생을 돌아볼 때의 묘한 편향도 설명한다. 사람들에게 가장 또렷한 기억을 꼽으라 하면 대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에 몰려 있다. 첫 연애 첫 직장 첫 독립처럼 처음 겪는 큰 사건이 그 시기에 쏟아지기 때문이다. 처음은 뇌에 깊게 새겨지고 그래서 그 시절은 길고 풍성하게 남는다.

뇌가 찍는 사진의 장수가 줄어든다

듀크대학교의 에이드리언 베얀은 여기에 물리학을 더했다. 그는 우리가 느끼는 시간이 새로 들어오는 정신적 이미지의 수에 달려 있다고 봤다. 어릴 땐 모든 게 새로워 뇌가 단위 시간당 수많은 장면을 찍는다. 장면이 많으니 그 구간이 길게 기억된다. 나이가 들면 신경 경로가 둔해지고 눈의 미세한 움직임도 느려져 같은 시간에 더 적은 장면을 담는다. 사진 장수가 줄면 그 시기는 짧게 압축된다.

몸 안쪽의 변화도 거든다. 어릴 땐 심장이 빨리 뛰고 신진대사가 활발하다. 몸속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니 같은 1분에 더 많은 박자가 찍힌다. 나이가 들어 대사가 느려지면 그 박자도 줄어든다. 뇌 속 도파민 분비가 줄어 내부 시계가 느슨해진다는 관점도 있다. 베얀이 정리한 나이 들수록 빨라지는 시간의 물리학은 이런 변화를 하나의 그림으로 묶는다. 여러 설명이 가리키는 방향은 결국 하나다. 새로움이 적고 변화가 둔할수록 시간은 빨라진다.

motion blur

휴가는 짧은데 돌아보면 길다

이 원리는 묘한 역설도 설명한다. 즐거운 여행은 그 순간엔 쏜살같이 지나간다. 그런데 끝나고 돌아보면 유난히 길고 풍성하게 느껴진다. 여행 중에는 새로운 자극이 쏟아져 시간을 잴 겨를이 없다. 하지만 기억에는 새 장면이 빼곡히 쌓여 나중에 떠올리면 길게 늘어난다. 택배를 기다릴 때의 그 설렘이 유독 길고 또렷하게 남는 것도 그 안에 기대와 변화라는 새로움이 들어 있어서다. 반대로 똑같은 사무실에서 보낸 한 달은 그 안에 있을 땐 그럭저럭 흘러도 돌아보면 거의 비어 있다.

출근길이 늘 똑같고 점심 메뉴가 늘 비슷하면 한 주가 통째로 흐릿한 한 덩어리로 뭉쳐 버린다. 그러니 시간을 다시 늘리고 싶다면 새로움을 일부러 넣으면 된다. 안 가본 길로 퇴근하고 안 먹어본 메뉴를 시키고 낯선 사람과 대화한다. 주말마다 안 해본 일을 하나씩 시도하는 것도 좋다. 사진을 찍거나 짧게 일기를 남기면 그날의 장면이 더 또렷하게 저장된다. 뇌가 새 장면을 찍기 시작하면 그 하루는 다시 두툼해진다. 똑같은 24시간을 더 길게 쓰는 비결은 시계가 아니라 경험의 밀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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