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사람이 하품하면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다
회의실에서 누군가 크게 하품한다. 몇 초 뒤 나도 입이 근질거린다. 참으려 해도 잘 안 된다. 심지어 지금 이 문장에 적힌 하품이라는 글자만 봐도 살짝 하고 싶어진다. 이 전염은 단순한 버릇이 아니라 사회적 뇌가 작동하는 흔적이다.
전염성 하품은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침팬지도 개도 무리 안의 하품에 옮는다. 침팬지는 같은 무리의 하품에 더 잘 옮고 낯선 무리의 하품에는 덜 반응한다. 종을 넘어 퍼지는 이 현상은 오랫동안 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전염되는 하품과 공감의 연결
오랜 연구에도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논쟁 중이다. 다만 가장 흥미로운 가설은 공감과의 연결이다. 뇌 영상 연구를 보면 남의 하품을 볼 때 사회적 신호와 감정을 처리하는 영역이 함께 활성화된다. 하품하는 사람을 따라 하품하는 정도가 공감 능력과 어느 정도 비례한다는 보고도 있다. 가족의 하품에 가장 잘 옮고 친구 지인 낯선 사람 순으로 전염력이 약해진다는 연구도 가까운 사이일수록 잘 옮는다는 이 가설을 거든다.
발달 과정도 이 연결을 뒷받침한다. 갓난아기는 남의 하품에 잘 옮지 않는다. 전염성 하품은 보통 네다섯 살 무렵부터 또렷해지는데 이는 아이가 타인의 마음을 읽기 시작하는 시기와 겹친다. 남의 하품에 옮는 힘과 남의 입장을 헤아리는 힘이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는 그림이다.
개도 주인 하품에 더 잘 옮는다
흥미로운 단서는 개에게서도 나왔다. 도쿄대 연구진은 개 스물다섯 마리에게 주인과 낯선 사람이 각각 하품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개들은 낯선 사람보다 주인이 하품할 때 훨씬 자주 따라 했다. 가짜로 입만 벌리는 동작에는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때 개의 심박수가 올라가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불안 때문에 옮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주인을 따라 하품하는 개의 모습은 하품 전염이 스트레스 반응이 아니라 정서적 유대와 얽혀 있음을 보여 준다. 사람과 오래 함께 산 동물이 사람의 상태에 공명하는 셈이다.
물론 이게 곧 공감의 완벽한 증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같은 현상을 다르게 보는 시선도 많다. 하품에는 뜨거워진 뇌의 온도를 식히는 기능이 있다는 가설이 있다. 입을 크게 벌리고 공기를 들이켜면 머리 쪽 혈류와 온도가 조절된다는 것이다. 흐려진 각성을 다시 끌어올려 졸음과 깨어 있음 사이를 넘나들 때 몸을 깨운다는 설명도 있다. 자폐 성향과 하품 전염의 관계를 다룬 초기 연구들도 뒤에 더 정밀한 분석에서 결과가 갈렸다. 얼굴을 잘 안 보는 성향 때문에 덜 옮는 것일 뿐 공감 자체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 주제는 아직 열려 있다.
따라 하는 뇌의 기본값
분명한 건 우리가 남의 상태를 무의식적으로 따라 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곁에 있는 사람을 자동으로 흉내 내도록 설계됐다. 웃는 얼굴을 보면 입꼬리가 따라 올라가고 누가 다리를 떨면 어느새 나도 떨고 있다. 이런 반응은 머리로 결정하기 전에 일어난다. 한번 머리에 박힌 멜로디가 하루 종일 귀에서 안 떠나던 그 현상처럼 우리 뇌에는 의지와 상관없이 굴러가는 자동 반응이 많고 하품은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사례일 뿐이다.
이렇게 남을 따라 하는 흉내는 사실 관계를 매끄럽게 만드는 윤활유다. 상대의 동작을 살짝 따라 하는 사람은 더 호감을 사고 협상도 더 잘 풀린다는 연구가 있다. 무의식적 모방이 우리는 같은 편이라는 신호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말투나 자세가 슬그머니 닮아 가는 것도 같은 결이다.
이런 동조는 무리 안에서 감정과 상태를 맞추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다 같이 졸린 분위기를 공유하고 다 같이 긴장을 푸는 식이다. 무리 전체가 비슷한 리듬으로 움직이면 위험을 함께 감지하고 함께 쉬기 쉬워진다. 남이 나를 본다는 착각을 다룬 글에서처럼 우리는 자신에게 몰두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타인에게 반응한다. 그러니 하품이 옮았다고 민망해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뇌가 곁의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자연스러운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