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한 곡이 머릿속에서 종일 도는 현상의 정체

이어웜 현상

출근길 지하철에서 어떤 노래의 후렴이 흘러나왔습니다. 30초 정도 들었습니다. 도착해서 사무실에 앉으니 그 후렴이 다시 재생됩니다. 점심 먹을 때도 재생됩니다. 회의 중에도 재생됩니다. 퇴근하면서 또. 잠들기 직전에도 또. 가사 일부는 잘 모르겠는데 멜로디는 너무 또렷합니다. 이걸 멈출 방법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다만 좀 의외의 방법입니다.

이어웜이라는 정식 명칭이 있는 현상

심리학에서 이 현상은 비자발적 음악 심상(Involuntary Musical Imagery, INMI)이라 불리며, 일상적으로는 “이어웜(Earworm)”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합니다. 더럼대학교 음악심리학 연구팀이 이 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더럼대학교 음악학과 켈리 야쿠보프스키 박사의 연구는 어떤 노래가 더 잘 이어웜이 되는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결과 이어웜이 되기 쉬운 노래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빠른 템포, 단순하면서도 약간의 예외적 음정 변화가 들어간 멜로디, 그리고 반복적인 후렴 구조. 즉 어떤 곡이 머릿속에 박히는 것은 그 곡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당신의 뇌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왜 후렴 전체가 아니라 한 소절만 도는가

지각 루프의 짧은 단위

이어웜의 평균 길이는 약 15~30초입니다. 노래 전체가 도는 게 아니라 가장 강한 한 조각만 도는 것입니다. 뇌의 작업 기억이 처리하기 좋은 단위가 이 정도 길이이기 때문입니다.

미완성 효과

심리학에서 자이가르닉 효과로 알려진 현상은 완료되지 않은 것이 완료된 것보다 더 잘 기억된다는 원리입니다. 노래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30초만 들으면, 뇌는 그것을 “미완성 작업”으로 분류하고 계속 처리하려 합니다. 후렴만 들은 사람이 후렴만 종일 재생하는 이유입니다.

저절로 박히는 상황의 공통점

이어웜이 가장 자주 생기는 순간은 단순 반복 작업 중이거나 마음이 산만한 상태입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활성화될 때 뇌의 음악 처리 영역도 같이 활성화되며, 그때 가장 최근에 접한 멜로디가 재생됩니다. 샤워 중에 흑역사가 떠오르는 것과 같은 회로가 노래에도 적용됩니다.

이어웜을 멈추는 의외의 방법들

첫째, 그 노래를 끝까지 듣기. 직관에 반하지만 가장 효과적입니다. 미완성으로 박힌 곡을 완성시키면 자이가르닉 효과가 해제됩니다. 후렴만 30초 들었다면 풀버전 3분을 들어보세요.

둘째, 가벼운 인지 부담 주기. 스도쿠나 단어 퍼즐 같은 작업이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여러 연구에서 보고되어 왔습니다. 무거운 작업은 오히려 효과가 떨어집니다. 작업 기억을 적당히 사용하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셋째, 다른 곡 의도적으로 듣기. 이른바 “치료 곡(cure tune)”으로 알려진 방법인데, 사람마다 효과적인 곡이 다릅니다. 일반적으로는 단순한 동요나 국가 같은 단조로운 곡이 잘 작동합니다.

가만 두면 어떻게 되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어웜은 결국 사라집니다. 평균 지속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몇 시간에서 하루 정도이며, 며칠씩 가는 경우는 드뭅니다. TED의 음악 인지 관련 강연들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이어웜이 일반적으로는 무해하며 오히려 뇌의 음악 처리 능력이 활발하다는 신호라는 점입니다.

다만 노래가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며칠씩 반복되고 그것이 일상을 방해하는 수준이라면, 강박장애의 한 양상일 가능성도 있어 전문가 상담이 권장됩니다. 보통의 이어웜은 그런 수준에 도달하지 않습니다.

그 노래에게 인사하는 법

오늘도 어떤 후렴이 머릿속에서 돌고 있다면, 그게 어떤 곡인지 확인해 보세요. 이름이 떠오르면 끝까지 들어보세요. 떠오르지 않으면 그냥 흥얼거리세요. 누가 보면 좀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그 흥얼거림은 30초짜리 미완성 곡을 마무리하는 의식입니다.

이어웜은 머릿속의 라디오가 채널을 멋대로 고정한 상태입니다. 라디오를 부수지 말고, 같이 들어주면 됩니다. 어차피 곧 다른 채널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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